Design/Inspiration

[Issue] 디지털 디톡스

stoneskipper 2015. 1. 26. 00:15


유선과 무선을 넘나드는 디지털 기기들에 파묻힌 내 모습이 중환자실의 온갖 기기에 연결된 환자처럼 보인다. 한시도 홀로 있지 못하고 어딘가에 로그인되어 있는 뇌 구석구석을 깨끗이 씻어낼 해독 시간이 필요하다. 전원을 끄고 플러그를 뽑자.

우린 스스로 멀티태스킹을 ‘잘’하고 있다고 믿는다. 멀티태스킹 관련 조사에 참여한다면 ‘동시에 3가지 이상의 작업을 한다’에 동그라미를 칠 것이다. 그러나 신경과학 연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멀티태스킹은 존재하지 않는다. 뇌는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못한다. 동시다발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뇌가 발 빠르게 계속 주의를 전환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러니 작업 속도가 느려지고, 퀄리티가 낮아지고, 실수가 많아질 수밖에! 택시 기사가 DMB 드라마를 힐끔거리면 마음이 불안했던 건 우리가 예민해서가 아니라 타당한 걱정이었던 거다. 멀티태스킹은 망상에 불과하다.

멀티태스킹 하는 ‘척’하는 사람일수록 집중력이 훨씬 쉽게 분산된다. 정보 관리 능력 역시 떨어진다. 수많은 자료가 널려 있지만 그중 무엇이 자신에게 필요하고 무엇이 써먹을 만한 정보인지 잘 골라내지 못해 불필요한 정보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이전 세대보다 똑똑하다고 믿고, 아이들은 한 번에 한 가지밖에 못하는 우리보다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하는 자신들이 훨씬 영리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우리는 모두 디지털에 중독됐다. 10대의 80%가 하루 동안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지루하다’, ‘짜증난다’, ‘답답하다’, ‘궁금하다’고 답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엄마들은 아이가 성적이 떨어졌거나 잘못을 하면 휴대전화를 빼앗고, 인터넷 선을 잘라버리고, TV 리모컨을 빼앗는 것으로 ‘벌’을 대신한다. 그러나 엄마 역시 휴대전화와 인터넷과 TV를 끊지 못한다.

ABC 방송의 독립 프로듀서인 수잔 모샤트는 아이 세 명과 자신을 ‘디지털 정화 운동’에 몰아넣었다. (물론 아이들은 격렬히 반발했는데 그녀가 실험 결과를 공개할 <로그아웃에 도전한 우리의 겨울>(민음인)의 ‘인세’로 유혹했다고 한다.) 집에 있는 모든 전자기기를 창고에 집어넣어 버리는 극단적인 실험을 6개월 동안 지속한 결과, 아들은 음악가로 변신했고, 큰딸은 저널리즘 인턴십과 운전면허시험을 통과했고, 막내딸은 수면 부족에서 비롯된 무기력을 고쳤으며, 가족이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 자신은 느긋하고 책을 많이 읽는 칼럼니스트로 업그레이드되었다. 그녀의 가족이 가족관계, 수면과 휴식, 식생활, 사교생활, 엔터테인먼트, 학습 등 모든 면에서 얻은 뜻밖의 수확은 상당히 매혹적이다.

그러나 디지털 단식을 단행하는 모두가 이들과 같은 효과를 얻을 거라고 예단할 순 없다. 사람들은 ‘만약’의 환상에 빠진다. 한 가지 일을 그만두면 그 시간에 더 가치 있는 일을 한다고 누가 보장하겠나. 담배를 끊는 대신 금연 패치에 중독되는 것이 현실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디지털 단식을 하는 순간 공부에 더욱 매진할 거라고 착각하지만, 아이들은 부모 생각대로 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얄팍한 생각만 하지 않는다면 디지털 단식은 분명 여러 모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디지털 단식에 대한 기사 배정을 받은 뒤 기사를 쓸 때까지 직접 디지털 단식을 해보려 했지만 시작조차 불가능했다. 섭외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휴대전화를 쥐고 있었고, 촬영한 사진파일을 받느라 웹하드에 접속했다. 페이스북에 근황 업데이트도 해야 했고, 일본 드라마에 푹 빠져 출퇴근 시간에도 스크린을 주시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디지털 접속이 끊긴 적이 있다. 특집 칼럼의 촬영 소품으로 쓰기 위해 집에 있던 노트북을 회사로 가져간 날 밤이었다. 촬영이 늦게 끝나 회사에 들르지 않고 바로 퇴근했는데, 노트북은 없고, 전화 배터리는 방전되어 깜빡거렸고(결국 다음 날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안방에 가보니 어머니는 딸이 싫어하는 케이블 프로그램을 깔깔대며 보고 있었다.

방으로 돌아오자 믿을 수 없이 고요했다. 그 낯선 감각이 불안해 수습기자 시절에 만든 잡지를 꺼내 뒤적거렸다. 가사가 생각나지 않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 자정 전에 잠든 게 몇 달 만일까? 그날 밤, 오랜만에 꿈 없이 깊은 잠을 잤다. 수잔 모샤트의 막내딸이 실험 기간 동안 그간의 수면 부족을 상쇄하기 위해 정신을 놓고 잤던 것처럼 말이다.

디지털 기기를 붙잡고 자정이 훌쩍 넘도록 깨어 있는 날이 다반사인 우리에게 디지털 단식은 의도치 않은 휴식을 제공한다. 잊고 있던 추억을 되새김질하게 해주고, 무뎌져가던 기억력을 영민하게 해준다. 결정적으로 플러그를 뽑자 없던 시간이 생겼다.

문제는 디지털 단식을 영원히 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디톡스된 뇌와 일상은 다시 디지털 독소로 더럽혀질 것이고, 하루하루 당장의 필요 때문에 디지털 기기에 접속할 테니 말이다. 요요현상을 일으키기 쉬운 단식 대신, 우리는 소식이나 반식 프로그램을 따른다. 디지털 단식도 그렇게 접근하면 되지 않을까?

수잔 모샤트의 디지털 해독 10계명 중 마지막 문항은 모든 것을 아우른다. “온 마음을 다해 RL(real life)를 사랑할지어다!” 전선을 통해 접속하지 마라. 내 몸과 마음으로 세상에 연결되는 것이 진짜 삶이다. 한 번 더, 이번엔 고의적인 디지털 단식을 해보고 싶다.



■ 디지털 해독을 위한 스크린 십(일)계명

1. 따분함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2. 멀티태스킹을 하지 말지어다.(숙제가 끝나기 전에는 영원히)
3. ‘윌핑’(검색 목적을 잊고 인터넷을 헤매는 것)을 하지 말지어다.
4. 운전 중에는 문자를 하지 말지어다.
5. 안식일에는 스크린 사용을 금할지어다.
6. 침실은 미디어 금지 구역으로 유지할지어다.
7. 이웃의 업그레이드를 탐하지 말지어다.
8. 계정은 ‘비공개’로 설정할지어다.
9. 저녁 식사 자리에 미디어를 가져오지 말지어다.
10. 미디어에 저녁 식사를 가져오지 말지어다.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RL(Real Life)를 사랑할지어다.
진행
최진주 기자
사진
지한비